무기력하다. 19세기 여성은 사회활동과 교육은 물론이고 예술활동도 제한되던 시대에, 남성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직접 화가가 된 수잔 발라동의 그림을 보며 힘을 내려고 한다. 그래도 오늘밤에는 생각없이 TV를 봐야겠다.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은 프랑스의 독보적인 여성 화가로, 모델에서 출발해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르누아르, 로트렉, 드가 등의 모델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익히고, 드가의 지지를 받아 화단에 입문한다. 그녀는 기존 미술계의 남성 중심적 시선에 도전하며, 여성 화가로서의 새로운 표현 방식을 만들어낸다. 특히 남성 누드를 주제로 삼은 그녀의 작품은 파격적이며, 누드에 대한 고정된 시각을 전복한다. 이상화보다는 진솔함과 생명력을 추구한 그녀는, 남성과 여성 모두의 몸을 똑같이 인간의 일부로서 정직하게 화폭에 담는다. 발라동은 화가로서 자신만의 시선을 끝까지 지켜나가며, 당대 여성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직업적 성공을 거둔다.
<투망(The Casting of the Net, 1914)>은 수잔 발라동의 대표작 중 하나로, 나체의 남성 세 명이 강가에서 그물을 던지는 장면을 묘사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누드화를 넘어, 인간의 노동과 협동, 움직임의 순간을 힘 있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발라동은 남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하지 않고, 근육과 자세를 치밀하게 관찰해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와 존엄성을 표현한다. 남성 누드를 여성 화가의 시선으로 당당히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당시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배경의 자연과 인물의 육체는 서로 어우러지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삶의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투망>은 육체의 미학뿐 아니라, 노동과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고 있다.
<투망>은 전통적인 시선 구조를 뒤흔든다. 수세기 동안 미술 속 누드는 대부분 남성 작가가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삼아 그렸지만, 발라동은 그 반대의 시선을 화폭에 담는다. 여성 화가가 남성을 그리고, 그것도 노동과 신체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은 기존의 예술 담론에 강한 충격을 준다. 발라동은 단지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누가 바라보고 누가 표현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투망>은 단순한 장면을 넘어, 여성 화가의 주체적 시선과 창작의 권리를 선언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오늘날에도 젠더와 시선, 예술의 권력 구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며, 수잔 발라동은 여성 예술가들에게 길을 열어준 선구자로 기억된다.
사냥하는 남성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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