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감수성이 낮은건지, 젠더적 긴장감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유럽의 북적이는 여행지 보다는 현지인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골목길과 키 큰 여인이 마음에 든다. 치렁치렁한 레이스 치마에도 정숙하고 참한 여인의 분위기가 신선하다.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는 미국 출신의 화가로,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국인 부모 사이에 태어나, 공식적인 교육보다는 부모의 예술적 감수성과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쌓은 문화적 경험을 통해 예술 세계를 넓혀갔다. 파리에서 프랑스 화가 카롤루스 뒤랑(Carolus-Duran)에게 사사받으며 본격적인 화업에 들어선 그는, 세련된 초상화 기법과 유럽식 화풍을 결합하여 미국과 유럽 상류층의 많은 의뢰를 받았다. 특히 빛과 색채,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그의 초상화에 깊은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대표작으로는 <마담 X의 초상>, <엘 할레오>,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 등이 있다.
<베니스의 거리(Street in Venice)>는 사전트가 1882년 무렵 그린 도시 풍경화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좁고 그늘진 골목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화면 중심에는 어두운 옷차림을 한 젊은 여인이 긴장된 듯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어둠 속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두 남성이 서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도시의 일상 풍경을 넘어,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감과 젠더적 긴장감을 내포하고 있다. 사전트는 거리의 빛과 그림자, 건물의 질감, 인물의 자세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감각적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달한다. 동시에, 이는 고전적 도시 풍경과는 다른 차원에서 사회적 시선과 여성의 위치를 은유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베니스의 거리>는 사전트가 전통적인 초상화 양식에서 벗어나 도시의 현실과 인간 심리를 회화적으로 탐구한 대표적인 시도이다. 그는 인물 배치와 구도를 통해 시선의 흐름과 긴장감을 조율하며, 관람자가 장면 속 불편한 정적과 모호한 상황을 직접 해석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사전트가 단순한 미적 재현을 넘어, 회화를 통해 사회와 인간을 들여다보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이후 사전트는 초상화를 점차 줄이고 풍경화와 수채화, 벽화 작업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등지에서의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자연과 문화적 장면을 그려냈다. <베니스의 거리>는 그가 일찍이 회화적 언어로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던 예술가였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런 곳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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