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현지화 한 모습의 마리아 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고갱 또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타히티의 여성과 아이로 표현했다. 엄격한 종교에서 이와 같은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니 놀랍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문명사회에 대한 회의와 원시적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아간 예술가이다. 어린 시절,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을 피해 페루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에게 자연과 인간의 본원적인 삶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후 항해사와 주식 중개인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누렸으나, 내면의 갈증은 그를 결국 예술로 이끌었다. 특히 그는 유럽 문명의 인위성과 허위성을 깊이 혐오했으며,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인간 존재를 찾아 나섰다. 브르타뉴에서도 그러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던 그는, 고흐와의 결별 이후 태고의 땅을 찾아 타히티로 떠난다. 고갱이 타히티에서 마주한 현실은 이미 서구 문명에 일부 물든 모습이었지만, 그는 그 안에서도 원시적 순수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은 그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타히티 원주민의 모습으로 새롭게 표현한 <이아 오라나 마리아>라는 작품으로 구체화된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Ia Orana Maria, 1891)는 고갱이 타히티에서 완성한 대표적인 종교화이다. 이 작품은 서양의 전통적인 성화에서 벗어나, 기독교적 주제를 타히티 원주민 문화와 결합시킨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그림 속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전통적 유럽인의 모습이 아니라, 짙은 피부색을 가진 타히티 여성과 아이로 표현되었다. 마리아는 풍요롭고 육감적인 형태로, 열대 자연 속에 서 있으며, 머리에는 후광이 그려져 있다. 이 모습을 향해 두 명의 타히티 여성이 전통 민속 의상을 입고 경배를 드리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러한 설정은 고갱이 서구적 신성 개념을 초월하여, 원시 세계 속에서도 신성을 동일하게 발견하고자 했던 의도를 반영한다. 그는 신성함이 인종이나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고갱은 <이아 오라나 마리아>를 통해 성서 속 이야기를 원시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하였다. 전통적 성화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백인의 모습으로, 서구적 미의 기준에 따라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고갱은 이 경계를 과감히 허물고, 타히티라는 이국적 배경 안에서 새로운 성모와 아기 예수를 탄생시킨다. 배경으로 펼쳐진 무성한 열대 식생과 과일들은 다산과 생명의 상징으로서, 성모의 존재를 자연과 긴밀히 연결시킨다. 또한, 노란 날개를 가진 천사는 기독교적 상징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타히티적 신비감을 덧입혀 신성함을 더욱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이 모든 요소는 고갱이 '종교적 진실'을 서구 문명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연성과 원초적 감각을 통해 포착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성모 마리아는 바로 '원시의 어머니'이자 '자연의 어머니'로 재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고갱의 이러한 혁신적 시도는 동시대 유럽 미술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는 파리에서 ‘조잡하고 야만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외면당했다. 서구의 시각으로 볼 때, 성모와 아기 예수를 원주민으로 묘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가깝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고갱은 기존 질서에 도전하면서, 신성이라는 개념이 특정 인종이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인간 존재 안에 살아 숨 쉬는 보편적 가치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문명이 만든 허위적 성스러움을 부정하고, 오히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순수한 조화를 통해 진정한 신성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고갱의 시도는 비록 생전에 외면당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20세기 미술의 문을 연 선구적 작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고갱의 '타히티 성모'는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선 보편적 인간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는 고갱이 꿈꾼 '원시적 신성'을 가장 순수하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타히티의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성경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고, 인간 존재의 근원적 신성함을 화폭에 담았다. 이 작품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는 특정 문화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신성의 표상으로 변모한다. 고갱은 타히티 원주민의 순수한 신심을 통해, 성스러움이 인종, 문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본성 속에 깃들어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 <이아 오라나 마리아>는 단순한 이국적 성화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신성 사이의 조화로운 융합을 꿈꾼 고갱의 예술적 선언이다.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타히티의 성모는 우리에게 묻는다. "참된 신성은 어디에 있는가?" 고갱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타히티의 햇살과 과일과 숲속에서 찾아냈다.
오렌지색 타히티 전통의상이 잘 어울리는 성모 마리아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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