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물분류학과 작물의 품종
식물분류학에서 식물의 종류를 나누는 기본단위는 종이고, 종 바로 위의 분류단위는 속이다. 벼 속에는 24종이 있고 그 중 재배종은 사티바와 글라베리마이다. 식물학적 종은 개체간에 교배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자연집단이며, 2명법으로 이름을 붙인다. 2명법은 속명과 종소명을 함께 표시한 것으로서 이렇게 붙여진 이름을 학명이라고 한다. 학명은 라틴어로 명명하고 이탤릭체로 쓴다. 아시아벼 학명은 Oryza sativa L. 로 쓰면 L은 명명자인 린네를 가리킨다. 식물의 학명은 세계 공통이지만 재배식물인 작물의 이름은 언어, 지역 등에 따라 다르다. Oryza sativa L. 은 한국어로 벼, 영어로 라이스(rice), 중국어로 컹 또는 센, 일본어로 이네(いね) 등으로 불린다. 하나의 종 내에서 형질의 특성이 차이나는 개체군을 아종 또는 변종으로 취급하며 이들은 특정지역 즉 특정환경에 적응해서 생긴 것으로 작물학에서는 생태종이라고 부른다. 생태종 사이에는 교잡친화성이 낮아 유전자교환이 어렵기 때문에 형태적 차이가 생기게 된다. 생태종 내에서 재배유형이 다른 것은 생태형으로 구분한다. 인디카벼를 재배하는 인도, 파키스탄, 미얀마, 방글라데시 등지에서는 1년에 2~3작의 벼농사가 이루어져 재배양식이 복잡한데 이에 따라 겨울벼, 여름벼, 가을벼 등의 생태형끼리는 교잡친화성이 높아 유전자교환이 잘 일어난다.
작물의 생태형은 다양한 재배환경에 적응하여 생긴 것이며, 각 생태형에는 많은 품종이 속해 있다. 품종이란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성을 지니고 그 특성이 재배상, 이용상 지장이 없을 정도로 균일하며 세대가 진전되어도 균일한 특성이 변화하지 않는 개체군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품종은 작물의 기본 단위이면서 재배적 단위로서 특성이 균일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집단이다. 각 품종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진다. 품종명은 특정한 원칙에 의하여 명명되는 것은 아니나 대개 품종의 특성이나 유래 등을 나타내는 낱말에 작물 이름을 붙인다. 예를 들면 장엽콩은 잎이 긴 특성을 지닌 콩품종이고 올보리는 숙기가 빠른 조생종 보리품종이다. 품종 중에서 재배적 특성이 우수한 것을 우량품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벼, 보리, 콩, 옥수수, 감자 등 농업생산의 안정상 중요한 작물에 대해 우량품종을 국가품종목록에 등재하도록 하고 국가품종목록에 등재된 품종만을 생산, 판매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작물의 품종은 내력이나 재배, 이용 또는 형질의 특성 등에 따라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면 품종의 내력에 의하여 재래품종, 도입품종, 육성품종, 근연교배품종, 원연교배품종, 1대잡종품종 등으로 나누어진다. 벼품종은 이용성에 따라 밥쌀용 품종, 가공기능성 품종, 초다수성 품종 등으로 나누어지고, 밥쌀용 품종은 고품질품종, 양질품종, 중질품종, 특수지역적응품종 등으로 나누어진다. 품종을 재배하는 동안 이형유전자형 분리, 자연교잡, 돌연변이, 이형종자의 기계적 혼입 등에 의하여 품종 내에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특성을 지닌 변이체가 생기게 되는데 이러한 변이체의 자손을 계통이라고 한다. 또한 품종을 육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잡종집단에서 특성이 다른 개체를 선발하여 증식한 개체군을 계통이라고 한다. 계통 중에서 유전적으로 고정된 것을 순계라고 하며 자식성 작물은 우량한 순계를 골라 신품종으로 육성한다. 영양번식작물에서 변이체를 골라 증식한 개체군을 영양계라고 한다. 영양계는 유전적으로 잡종상태라도 영양번식에 의하여 그 특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우량한 영양계는 그대로 신품종이 된다.
2. 품종의 특성과 신품종의 구비조건
작물의 형태적, 생태적, 생리적 요소를 형질이라 하고 품종의 형질이 다른 품종과 구별되는 특징을 특성이라고 한다. 예컨대 작물의 키와 숙기(출수기)는 형질이고 키의 장간, 단간 그리고 숙기의 조생, 만생은 품종의 특성이다. 작물의 재배상, 이용상 중요한 형질은 생산성, 품질, 저항성, 적응성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품종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예컨대 고품질 벼품종 중 상미벼는 도열병저항성을 지닌 조생종이고 화성벼는 줄무늬잎마름병저항성, 내냉성 만식적응성을 구비한 중생종이며 일품벼는 내냉성, 내도복성, 만식적응성을 갖춘 중만생종이다. 작물의 재배는 주어진 재배환경에서 품종이 최고의 수량을 내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품종이 수량을 올리는 능력을 수량성 또는 생산성을 하며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다수성을 품종이라고 한다. 농업의 수익성이 높이려면 다수성이면서 품질이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해야 한다. 경제가 발전하여 소득수준이 향상될수록 소비자들은 고품질을 요구한다. 농산물의 품질은 모양, 색깔 등 외관특성, 식미, 성분 등 소비특성, 수분함량, 저장성 등 유통특성, 도정비율, 전분가 등 가공특성 등 다양하다. 작물은 병, 해충, 잡초 등 생물적 스트레스와 온도, 수분, 토양, 약제, 오염물질 등 환경적 스트레스에 의하여 생육과 생산성에 제한을 받는다. 세계적으로 곡물 감수량의 50% 정도가 병해충과 잡초의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병해충과 잡초는 주로 농약을 살포하거나 저항성 품종을 재배하여 방제한다. 저항성 품종은 농약사용에 따르는 잔류독성,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방제비용과 노력을 절감할 수 있다.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식품의 안전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농약을 적게 친 농산물의 선호도가 높고 가격 또한 비싸다. 농작업의 생력화, 기계화 및 시설재배가 발달함에 따라 특정 재배조건에 적응하는 품종이 요구된다. 품종의 적응성에는 지리적 적응성, 생력, 기계화 적응성, 생태적 적응성 등이 있다. 품종의 지리적 적응성에는 조만성이라는 숙기가 관여한다. 북부지역에 재배하는 벼는 조생종을 심어야 가을 저온이 오기 전에 생육을 마치게 된다. 벼의 직파재배는 육묘, 모내기 등에 드는 노력이 기계이앙재배에 비하여 역 25%의 생력효과가 있는데 직파적응성 품종은 저온발아성이 높고 초기생장이 좋아야 한다. 무, 배추 등 채소의 연중공급을 위해서는 노지재배, 촉성재배, 억제재배 등 각 작형에 알맞은 생태적 적응성 품종이 필요하다. 작물의 품종은 특성이 비슷한 것들이 많은데, 더욱이 외관상 형태적 차이가 크지 않은 품종들을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품종을 식별하기 위해 포장검정과 실내검정을 한다. 포장에서는 종자를 파종하여 수확할 때까지 식물체의 생장발육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하여 품종을 구별하고 실내에서는 염색체검경, 생화학적분석, 전기영동, DNA 분자표지 판별과 영상분석 등을 이용하여 품종을 식별한다.
신품종의 구비조건은 구별성, 균일성 및 안정성 세가지이다. 구별성(Distinctness)이란 신품종의 한가지 이상의 특성이 기존의 알려진 품종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을 말한다. 균일성(Uniformity)이란 신품종의 특성이 재배상, 이용상 지장이 없도록 균일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안정성(Stability)이란 세대를 반복해서 재배하여도 신품종의 특성이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신품종의 세가지 구비조건을 영어의 첫글자를 따서 DUS라고도 한다. 신품종에 대해 국가기관 국립종자원에 품종보호권을 설정, 등록하면 그 신품종은 보호품종이 되어 일정기간동안 법적으로 보호를 받게된다. 신품종을 보호품종으로 보호받으려면 신규성, 구별성, 균일성, 안정성 및 고유한 품종명칭과 같이 다섯가지의 품종보호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3. 품종의 선택
우량품종을 선택하는 것은 성공적인 영농의 지름길이다. 왜냐하면 우량품종은 작물의 생산성 증대와 품질향상은 물론이고 농업생산의 안정화와 경영합리화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종이 작물의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는 정도는 작물의 종류와 재배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50%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배자는 품종을 선택하기 전에 작물의 재배목적, 재배환경, 재배양식 그리고 각종 재해에 대한 위험분산과 시장성 및 소비자의 기호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감자나 고구마를 전분원료로 재배하는 경우 재배기술에 의하여 전분함량을 높이기 어려우므로 전분함량이 높은 품종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병해발생 상습지에는 내병성 품종을 심고 찬물이 나는 곳에는 내냉성 품종을 재배하며 보리 2모작 논에서는 조숙성 보리품종과 만식적응성 벼품종을 선택한다. 여러 품종 중에서 실제 재배할 품종을 선택할 때에는 농업연구, 농업지도 관련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권장하는 우량품종을 선택하되 그 품종의 특성과 단점 및 재배상 유의점을 잘 파악하여 적당한 지역과 적당한 품종을 고른다. 같은 지역에 출수기가 다른 2~3품종을 선택하여 재배하면 재해의 회피 및 분산효과가 있어 피해를 줄이고 농기계 이용효율을 높이며 작업시간을 적절히 안배할 수 있다.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품종을 선택하고 소비할 곳을 미리 확보하며 생산량을 조절함으로써 손해를 먹을 수 있다.
4. 품종의 변천
작물의 품종은 사회적, 경제적 여건 변화, 재배환경과 재배양식의 변화, 시장과 소비자의 기호변화 그리고 육종방법의 변화 등에 의하여 계속 바뀌어 간다. 품종의 수명은 대략 3~5년으로 조사되었으나 감자의 '남작'품종은 백년의 넘게 재배되고 있다. 품종이 변천해 온 이유를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화학비료가 대량 공급됨에 따라 기존 품종들은 다비다수성 품종으로 교체되었다. 둘째, 품종의 병해충 저항성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붕괴되며 환경스트레스 저항성도 환경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계속해서 새로운 저항성 품종으로 교체되었다. 벼도열성 저항성 품종은 병원균 레이스(레이스: 변이된 병원체)의 분화 때문에 평균수명이 3년 정도이다. 최근에는 각종 병해충에 대해 복합저항성을 지닌 품종이 재배된다. 셋째, 시장과 소비자의 기호변화에 부응하여 다양한 품질의 품종들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넷째, 육종방법의 변화도 품종변천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우리나라의 벼 품종은 재래품종, 도입품종, 근연교배육성품종, 원연교배육성품종, 화분배양육성품종의 순으로 변천하였다. 머지않아 벼에 다른 생물종의 유전자를 도입한 형질전환품종이 재배되고 것이다.
5. 품종의 육성
우량품종은 육종을 통해 육성된다. 작물육종은 유전변이 중에서 우량한 개체를 선발하여 신품종으로 육성한다. 육종방법은 변이를 얻는 방법에 따라 분리육종, 교배육종, 돌연변이육종, 배수성 육종, 형질전환육종 등으로 구분된다.
작물의 품종육성은 세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 1단계는 재래품종에서 우수한 개체를 선발하여 우량품종을 육성한다. 2단계는 재래품종의 우량형질을 조합하여 신품종을 육성한다. 3단계는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원연품종 또는 다른 생물종으로부터 유용유전자를 도입하여 재래품종에는 없는 새로운 형질을 지닌 신품종을 육성한다. 그동안 3단계에서 육성한 우량품종은 국가산업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1972년에 육성한다 벼의 원연교배품종 '통일'은 녹색혁명을 주도하여 주곡자급과 식량증산을 이루었고 또한 농자재, 농기계, 농약, 비료산업 등의 발전을 촉매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작물의 육종은 국가기관인 농촌진흥청과 민간기업인 종묘회사, 대학, 개인 육종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벼, 보리, 콩 등 주요 작물과 과수, 화훼 등은 농촌진흥청이 주관한다. 채소류는 농촌진흥청에서 특수작형에 알맞은 품종육성을 담당하고 종묘회사에서 상업성이 높은 배추, 무, 고추 등의 품종을 육성하고 판매용 종자를 생산한다. 최근에는 국가기관으로서 지역 특화작목 시험장을 설치하여 마늘, 딸기, 토마토, 버섯, 감, 약초, 국화, 백합 등 작물별로 품종육성을 전문화하고 있다. 품종의 육성에는 오랜 세월과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육종기술이 발달하여 육종연한를 단축한다고 하더라도 벼, 밀 등 1년생 작물은 6년이 걸리고 과수나 임목은 20년 이상 걸린다.
출처: 삼고 재배학원론(채제천, 박순직, 강병화, 김석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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