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목, 반쯤 감긴 눈, 그리고 고요한 슬픔에 잠긴 모딜리아니의 크리스티나! 무슨 걱정이 있는걸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20세기 초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탈리아 출신 화가로, 인물화를 통해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한 작가다. 그의 초상화는 비현실적으로 길게 늘인 목과 타원형의 얼굴,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유명하다. <크리스티나>는 이러한 모딜리아니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화면 속 여인은 조용하고 내면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보다 정서의 잔향을 느끼게 만든다. 모딜리아니는 인물의 외형보다는 존재의 본질과 정서를 포착하려 했으며, 이러한 의도가 작품 전반에 깊이 배어 있다.
이 작품 속 크리스티나는 절제된 색채와 구조를 통해 조용한 고독감과 내면의 평온을 전달한다. 청록빛 배경은 인물의 고요한 분위기를 강화하며, 흰색의 의상은 얼굴과 몸의 선을 돋보이게 한다. 얼굴은 비현실적으로 단순화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감겨 있는 듯한 눈은 몽환적인 정서를 자아낸다. 모딜리아니는 눈동자를 아예 생략하거나 감기게 그려, 인물과 감정적 교류를 피하면서도 깊은 내면성을 유도하는 방식을 즐겨 썼다. 이 같은 접근은 단순한 초상을 넘어서, 인물의 영혼에 닿으려는 예술적 시도였다.
<크리스티나>는 모딜리아니가 추구한 ‘형태의 단순화와 감정의 응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는 현실의 형태를 해체하고 재조합하여 이상화된 인간상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시대의 미학적 기준을 확장시켰다. 이 작품은 인물의 신원을 특정짓기보다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침묵의 순간을 보여주는 회화적 시(詩)에 가깝다. 화려하거나 극적인 요소 없이도 깊은 울림을 전하는 이 초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멈추고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모딜리아니의 예술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존 싱어 사전트 <마담 X의 초상화> 최초 버전의 흘러내린 어깨끈을 연상시킨다. 흘러내린 어깨끈은 관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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