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젊잖은 편 말이 없구나."
노천명 시인의 시 <사슴> 일부분이다.
목이 길어서 슬픈 여인이 여기에 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이탈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독창적인 초상화 스타일로 유명하다. 그는 1906년 파리로 이주하여 몽파르나스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기법을 발전시켰다. 원시 미술과 동시대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길게 늘어진 인체 비례와 독특한 색채 활용으로 차별화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모딜리아니는 건강 악화와 방탕한 생활로 인해 35세에 결핵성 수막염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연인이자 뮤즈였던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은 그가 세상을 떠난 며칠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자를 쓴 여인의 초상(1917)>은 잔 에뷔테른을 모델로 한 대표작으로, 파리 모더니즘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이 초상화는 세 가지 주요 색상(분홍, 주황, 검정)을 활용하여 인물을 색면으로 분할하는 동시에, 길게 늘어진 목과 타원형 얼굴로 우아한 리듬을 형성한다. 특히, 모딜리아니는 넓은 챙의 모자를 성인의 후광처럼 표현하여 에뷔테른의 순수함과 신비로움을 강조했다. 모델의 푸른 눈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형식적 요소로 작용하며, 전체적으로 형태와 구도의 실험적 접근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전형적인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에뷔테른을 향한 개인적 애정과 예술적 탐구가 결합된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그의 다른 초상화와 달리, 이 작품은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이상화된 조화와 균형을 통해 모델을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이는 동시대 보헤미안 화가들의 작품과 차별화되며, 모딜리아니가 단순한 인물 표현을 넘어 조형적 실험과 감성적 깊이를 동시에 탐색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슬프더라도 목이 길어서 아름다운 여인이 되고 싶다.

'문화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곤 실레 〈에두아르트 코스마크〉 (0) | 2025.03.09 |
---|---|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0) | 2025.03.08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춤〉 (0) | 2025.03.06 |
폴 고갱 〈타이티 여인들〉 (0) | 2025.03.05 |
피에트 몬드리안 〈꽃피는 사과나무〉 (0) | 2025.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