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86 충청도 최초의 사액서원, 충현서원 방문 후기 충남대 평생교육원 도정희 선생님의 '박물관 학예사' 강좌에서 이번주는 충현서원을 다녀왔다. 서민식 이사장님이 현장을 직접 안내해 주셨다. 서원 앞 문은 가운데 큰문과 좌우 작은문 총 3개가 있는데 가운데 문은 신이 왕래하는 문이기에 우리는 좌우 작은문을 사용해야 한단다. 그리고 서원에 오를때는 오른쪽 계단으로 오른발을 먼저 딛고 왼발을 오른발 옆에 두고, 다시 오른발을 딛고 왼발을 오른발 옆에 두면서 오르고, 내려올 때는 왼쪽 계단으로 왼발을 아래 계단에 먼저 딛고 오른발을 왼발 옆에 두고, 다시 왼발을 딛고 오른발을 왼발 옆에 두는 식으로 천천히 오르고 내린다고 한다. 성현을 모신 서원 내부도 개방해 줘서 볼 수 있었다. 서원의 역할은 제사와 교육이고, 서당은 현재의 초등학교, 서원은 중학교, 향교는 .. 2025. 5. 25.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 방문 후기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는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단재로229번길 47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유서 깊은 공간으로, 1991년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생가지는 대전오월드에서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주차장과 안내소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어 가족이나 단체 방문에도 불편함이 없다. 생가지에 들어서면 신채호 선생의 삶과 업적을 소개하는 홍보관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홍보관에서는 신채호 선생이 펼친 언론계몽운동, 신민회 창립, 무장 독립운동, 민족사 연구 등 다양한 활동과, 대전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함께 접할 수 있다. 홍보관을 지나면 선생의 삶을 기리는 유허비와 동상이 마당에 세워져 있어,.. 2025. 5. 24. 대전시립박물관 《불멸의 화가 반 고흐》 관람 후기 드디어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열린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을 관람했다. 고흐는 평생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만은 놓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광기에 이끌렸고, 병든 몸으로도 캔버스를 찾았다. 무엇이 이토록 고흐를 몰아갔던 걸까? 전시장에서 마주한 자화상, 다수의 여인들의 얼굴, 개성적인 풍경화는 그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느끼게 한다.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삶 자체였다. 전시를 통해, 예술이 어떻게 삶의 버팀목이 되는지 보았다.그의 작품은 형식도 색감도 독특했다. 초기 어두운 채색의 농민화부터, 후기 강렬한 색채의 풍경화까지 변화를 한눈에 보여준다. 고흐는 기존 회화의 틀을 깨고 자기만의 언어를 완성해 갔다. 특히 짧고 거친 붓터치는 강한 몰입감을 준다. .. 2025. 5. 23.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인상파에게 중요한 것은 "느낌이 잘 드러나는 그림" 이라는 점이다. 사진으로 포착할 수 없는 감흥을 표현하는 예술이 인상파 화가들이 지향한 목표이다.는 클로드 모네가 1873년에 완성한 작품으로, 인상주의 미술의 시초가 된 상징적인 그림이다. 모네는 프랑스 르아브르 항구의 새벽 풍경을 캔버스에 담으며, 순간의 빛과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다. 이 작품에서 기존 미술의 세밀한 묘사 대신 빠르고 흐릿한 붓터치와 밝고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여 자연이 주는 ‘첫 인상’을 표현했다. 이러한 기법은 당시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후에 ‘인상주의’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전통적인 회화와는 달리 형태나 윤곽을 명확하게 그리지 않고, 빛과 색의 변화에 집중한다. 모네는 구체적인 사물의 모습보다 순간적인 빛.. 2025. 5. 20.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모네는 200여 점의 연작을 그렸다. 을 그리기 시작할 무렵에도 미쓰카타 고지로 같은 일본인이 모네의 작품을 사러 왔다. 이러한 일본과의 교류로 모네는 지베르니에 있는 자기집 정원 연못에 일본식 다리를 놓기도 했다.클로드 모네는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화가로, 자연의 빛과 색채를 포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는 1873년 작품 를 통해 인상주의의 문을 연 인물로 평가받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연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1880년대 초 유럽 여러 지역을 여행한 뒤 두 번째 아내 앨리스와 함께 프랑스 지베르니에 정착하면서, 모네는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 속에서 예술적 안정을 찾게 된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집 주변에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며, 그림의 주요 소재로 .. 2025. 5. 18. 장 프레데릭 바지유 <가족 모임> 살롱전에 입선도 못하고 작품도 팔리지 않아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던 모네와 르누아르가 포함된 바티뇰파 동료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사람은 부유한 집안 출신의 바지유였다. 그러나 그는 동료들과 계획했던 그룹전, 즉 인상파전 개최를 보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보불 전쟁에서 전사했다. 바지유는 동료 화가들에게 더없이 따뜻하고 든든한 친구였다.장 프레데릭 바지유는 1841년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태어난 인상주의 화가로, 부유한 개신교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그는 유제느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보고 회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가족의 동의 아래 의학과 회화를 병행하게 된다. 1859년부터 의학을 공부했으나, 1862년 파리로 유학하며 본격적으로 회화 수업을 듣기 시작한다.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서 르누아르, 모네, 시슬.. 2025. 5. 17. 이전 1 2 3 4 5 6 ··· 15 다음